자녀 교육/유아기(3~6세)

애착 유형이 아이의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 – 안전한 관계가 만든 자존감

thebestsaebom 2025. 5. 12. 14:28

사회성은 타고나는 걸까, 길러지는 걸까?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들은 아이의 사회성을 자주 걱정하게 된다. "우리 아이는 낯선 사람 앞에서 말을 못 해요",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해요", "자꾸 혼자 놀기만 해요" 같은 말은 부모 모임에서 흔히 오가는 고민 중 하나다.
하지만 아이의 사회성은 단순히 말주변이나 활발함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조절하며, 관계 안에서 안전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역량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성의 바탕에는 바로 ‘애착’이라는 보이지 않는 정서적 연결 고리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자신을 어떻게 여기는지를 결정짓는 이 애착 유형은 아이의 자존감과 사회성 발달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도 물론 영향을 미치지만 아이가 초기 양육자와 맺는 애착 관계의 질은 이후 모든 대인 관계의 '기초 설계도'가 된다.

애착 이론, 왜 유아기 사회성의 출발점인가?

애착 이론은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존 볼비(John Bowlby)에 의해 처음 제시되었고, 이후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의 ‘낯선 상황 실험’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이 실험은 12~18개월 유아와 보호자가 분리되었다가 다시 만나는 반응을 관찰하여 아이의 애착 유형을 분류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세 가지 대표적인 애착 유형이 도출되었다.

  • 안정 애착: 보호자와의 재회 시 쉽게 진정되며, 보호자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함
  • 회피 애착: 보호자와 재회해도 무관심하거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음
  • 불안정-양가 애착: 보호자에게 의존적이지만 동시에 화를 내거나 거리를 두며 모순된 반응을 보임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히 유아기 행동의 차이가 아니라, 아이가 인간관계를 맺는 전반적인 방식과 기대치를 어떻게 내면화했는가에 대한 단서다.
애착은 단순히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위험에 처했을 때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기지(base)'의 역할을 하는 정서적 구조다. 이 기반이 튼튼할수록 아이는 새로운 관계에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고 실패나 거절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애착 유형이 아이의 사회성에 미치는 영향
아이와 곰인형이 안고있는 모습 - 사진 출처: pixabay.com (무료 이미지)

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이가 사회성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유

안정 애착을 가진 아이는 자기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관계가 깨지지 않는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래와의 놀이 상황에서 협력하거나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공감하고 양보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조절해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높다.

또한, 안정 애착을 통해 양육자로부터 ‘지지받는 경험’을 충분히 한 아이는 새로운 환경이나 낯선 사람에 대해서도 과도한 경계심 없이 열린 태도를 갖는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모르는 어른과도 눈을 마주치고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회적 자신감을 보인다.

반면, 회피 애착을 형성한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억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갈등을 피하거나 타인의 감정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일 수 있고, 겉보기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정서적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다.

불안정-양가 애착을 보이는 아이는 친구에게 매달리다가도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 쉽게 상처받거나 공격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불안정한 관계 경험이 반복되면 또래 관계에서도 자신감과 일관성을 잃게 된다.

부모의 반응이 애착 유형을 결정짓는다

애착은 유전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모의 반응 방식, 일관성, 감정 수용 태도에 따라 애착 유형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울 때 부모가 늘 일관되게 반응하고,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수용해 주는 환경에서는 안정 애착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부모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거나, 감정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경우 아이는 관계를 불안정하게 느낀다.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양육이 아니라, 반복적인 회복과 안정된 일관성이다. 완벽하게 반응하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엄마가 아까는 화가 났지만, 너를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야”, “속상했지? 네 마음 이해해”와 같은 정서적 회복 언어를 자주 사용하는 부모는 아이에게 관계 안에서 감정을 다루는 모델링을 제공한다.

특히 유아기에는 부모의 말보다 표정, 눈빛, 신체 접촉이 훨씬 큰 의미를 갖는다. 아무 말 없이도 다정한 눈맞춤과 가볍게 어깨를 감싸주는 행동만으로도, 아이는 “나는 안전하다”는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

애착은 고정되지 않는다 – 부모의 변화가 관계를 바꾼다

가장 희망적인 사실은, 애착 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 가능한 관계의 결과라는 점이다.
아이와 부모 사이의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그 과정에서 부모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진다면, 불안정한 애착도 점차 안정된 방향으로 옮겨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아이의 감정을 “그만해, 징징대지 마”라고 반응했다면, 이제는 “너 정말 속상했구나, 나도 네 입장이었으면 그랬을 것 같아”라고 말해보자. 부모의 감정적 수용력이 높아지면,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믿고 표현하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반복이 정서적 안전감의 체험으로 연결된다.

또한, 유아기 후반기(5세~6세) 이후에는 또래 관계나 교사와의 관계를 통해 2차 애착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부모 외의 관계에서도 충분히 안정감을 보완하고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언제나 가장 처음 맺은 관계, 즉 부모다.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아이의 사회성은 단순한 성격이나 말주변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 수 있는지, 자신의 감정을 믿고 표현할 수 있는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조율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기반은 바로 애착에서 시작된다.

‘아이의 사회성이 약하다’고 느껴질 때, 가장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아이의 외향성보다도 부모와의 정서적 연결 상태다.
그 관계 안에서 아이는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라는 감정을 배우고, 세상과 연결될 준비를 한다.

완벽한 부모가 될 필요는 없다. 다만 아이가 필요할 때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곁에 있는 사람, 그 존재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에는 자신을 믿을 수 있는 힘과, 세상을 신뢰할 수 있는 용기가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