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유아기(3~6세)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 유아기 정서 대화법

thebestsaebom 2025. 5. 9. 15:27

유아기의 말 한마디는 아이의 인생 밑그림이 된다


"나는 왜 이렇게 못해?", "나 바보야?" 아이가 이런 말을 무심코 내뱉는 순간, 부모는 충격과 함께 자책을 경험하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은 아이가 갑자기 만든 표현이 아니다. 주변 환경, 특히 부모의 언어와 반응을 통해 축적된 인식의 결과물이다.
유아기는 아이가 자아를 처음으로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시작하는 시기다. 따라서 이 시기의 언어적 상호작용은 단순한 ‘소통’을 넘어서, 아이의 자존감과 정서 안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아이의 마음에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말,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다.

유아기 자존감의 핵심은 '자기 인식'이다

36개월 전후의 아이는 ‘나’라는 개념을 조금씩 구체화하며 세상과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영아기까지는 기본적인 생존 욕구 충족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같은 자아 중심적 사고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시기다. 이러한 자기 인식의 기초가 바로 자존감의 씨앗이 된다.

자존감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도전과 실패를 견디는 내적 힘으로 작용한다. 이 시기 부모의 언어와 태도는 아이의 자존감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외부 요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상황에서 "이게 뭐가 어려워?"라고 말하는 것과 "처음엔 누구나 헷갈릴 수 있어, 잘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인식의 방향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든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도전에 대한 불안을 먼저 배우고, 실수에 대해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며,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게 된다. 반대로 자존감이 건강하게 형성된 아이는 실수를 배움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피드백을 위협이 아닌 정보로 해석할 줄 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단지 ‘어떻게 말해주었는가’에 있다.

정서 발달을 돕는 대화는 기술이 아닌 태도에서 시작된다

부모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 중 하나는 “어떤 말을 해야 아이 자존감이 높아지나요?”이다. 물론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다. 아이는 말의 뜻보다 말이 전달되는 방식, 즉 톤, 표정, 타이밍, 일관성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서 발달을 돕는 대화의 핵심은 ‘존중과 수용’이다.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실수를 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지적하는 대신, “그럴 수 있어”, “속상했구나”, “네 마음 이해해”와 같이 감정을 먼저 수용해 주는 대화가 필요하다. 감정이 안전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경험은 아이에게 강력한 심리적 안전망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으로 이어진다.

또한, 일관된 피드백도 중요하다. 오늘은 "괜찮아" 해놓고 내일은 같은 행동에 "왜 또 그래!"라고 반응하면, 아이는 혼란을 느끼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정서적 안정은 예측 가능한 반응과 지속적인 지지 속에서 형성된다. 그러니 말의 ‘정보’보다 말이 주는 ‘경험’을 일관되게 쌓아주는 것이 관건이다.

아이의 자존감, 부모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행복한 아이-출처: pixabay.com (무료 이미지)

아이를 자라게 하는 말 vs. 주저앉히는 말

“엄마 말 좀 들어”, “그것도 못 하니?”, “다른 애는 잘하던데?” 이런 말들이 무심코 튀어나오는 건 현실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아이에게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아이는 아직 ‘평가’와 ‘사랑’을 분리해서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말은 곧 사랑받지 못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어떤 말이 자존감을 키울 수 있을까? 핵심은 성과보다 과정에 주목하는 피드백이다. 예를 들어, "잘했어!"보다는 "어떻게 생각해서 그렇게 했어?", "이거 하려고 꽤 노력했구나"와 같이 아이의 노력, 선택, 감정을 인정해 주는 말이 더 강한 자존감 형성에 기여한다. 아이는 “나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내 행동에는 의미가 있어”라고 느끼게 되며, 이는 자율성과 책임감을 함께 키워준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결과만을 칭찬하면 아이는 칭찬받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이는 결국 자율성을 해친다. 반면, 내면의 가치를 인정하는 칭찬은 자기 결정력을 강화하고 내적 동기를 일으킨다. 자존감은 ‘남이 나를 좋아해 주는 느낌’이 아니라, ‘내가 나를 긍정할 수 있는 감정’이다.

가정은 자존감이 자라는 언어 실험실이다

유아기는 단지 귀엽고 순수한 시기가 아니다. 이 시기는 인간 발달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창(window of opportunity)이다. 특히 가정은 아이에게 첫 번째 사회적 관계의 무대이자, 최초의 언어 환경이다. 이 환경에서 어떤 말이 오가느냐에 따라 아이는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보거나, 위험한 곳으로 인식하게 된다.

하루 중 딱 10분만이라도 아이와 진심으로 마주 앉아 “오늘은 어땠어?”, “속상한 일은 없었어?”, “오늘은 너랑 함께 해서 참 좋았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자기 존재가 의미 있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이런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아이의 정서를 형성하며, 정서는 결국 아이의 자아를 결정한다. 부모가 전하는 말은 아이의 감정 언어가 되고 그 감정 언어는 훗날 아이가 자신과 타인에게 사용하는 언어가 된다.


아이의 자존감은 특별한 교육이나 거창한 프로그램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그 시작은 언제나 부모의 말 한마디다. 오늘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넸는지 돌아보자. 그리고 내일은 그 말속에 조금 더 따뜻한 수용과 지지를 담아보자. 부모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내면에 뿌리내리는 동안,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