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루는 왜 이렇게 힘들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전쟁 같은 하루.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어린이집 등원을 준비하는 데만도 한 시간이 훌쩍 넘는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밤새 잠을 설친 채 부은 눈과 정리되지 않은 머리로 너무나도 낯설다. "이게 정말 나였던가?"
엄마가 된다는 것은 마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아무도 이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매뉴얼을 주지 않았다.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때로는 내 감정과 체력을 모두 소진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고, 동시에 ‘나’였던 나는 점점 흐려졌다.
이런 날엔 문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당연하게 여겨지는 존재. 위로보단 책임을, 감사보단 요구를 더 많이 받는 역할. 그게 ‘엄마’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좋은 엄마'라는 허상에 지친다
요즘은 정보의 시대다. 육아 관련 서적,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에는 ‘좋은 엄마’가 되는 법이 넘쳐난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기, 감정 조절하기, 놀이 육아 실천하기, TV 대신 그림책 읽어주기... 어느 것 하나 틀린 말은 없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건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오늘도 다짐했다. 아이에게 화내지 않기로. 하지만 장난감을 치우지 않고 TV만 보겠다는 아이에게 결국 나는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또 자책했다. “왜 나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할까?”
‘좋은 엄마’라는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한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턴가 육아에도 경쟁을 들이댔다. 누가 더 창의적인 놀이를 하는지, 누가 더 유기농 간식을 챙기는지, 누가 더 감정적인 공감을 잘해주는지. 그렇게 우리는 서로 비교하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엄마란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실수하더라도 아이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사람이다. 아이에게 사랑받는 엄마는 ‘그림처럼 예쁜 육아’를 실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의 눈높이에서 공감하고 함께 아파해주는 사람이다.
육아 스트레스는 죄가 아니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감정을 숨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엄마에게 희생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자신의 고됨을 말하면 ‘엄마가 그 정도도 못 참느냐’는 반응을 듣기 일쑤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말하지 않게 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다.
하지만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속에 쌓이고 언젠가는 폭발한다. 육아 스트레스를 인정하는 것,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결코 나약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말로 꺼내는 연습, 글로 정리하는 시간, 같은 처지의 엄마들과 교류하며 나를 조금씩 풀어가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육아 스트레스의 무게를 덜어준다.
무엇보다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아이에게도 감정을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곧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작이 된다.
육아의 진짜 어려움은 '지속됨'이다
갓난아기 시절에는 밤중 수유와 잠 부족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감정조절이 어렵고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또 다른 도전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크면 사춘기가 오고, 학업 스트레스와 진로 고민 등 또 다른 육아의 국면이 펼쳐진다.
그래서 육아는 '지속되는 힘듦'이다. 마라톤처럼 장기전이고, 체력과 정신력 모두를 필요로 한다. 많은 엄마들이 중간에 지치고 자신을 잃는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엄마 자신의 회복력'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주 잊는다. 이 힘듦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오늘 내 아이가 뗀 첫걸음마가, 첫 말을 내뱉는 순간이, 그리고 나를 껴안으며 ‘사랑해’라고 말하던 그 하루가 모두 지나가버린다는 걸. 그 순간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육아의 지속됨 속에는 고됨만이 아니라 수많은 기적이 숨어 있다. 그 기적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엄마 자신이 버티는 존재가 아니라 ‘느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나를 먼저 돌보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
심리학에서는 ‘자기 돌봄(self-care)’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쉬거나 여행을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매일의 일상 속에서 내 감정에 귀 기울이고, 내 마음의 언어를 이해하며,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아이에게도 건강한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다. 마치 산소마스크를 먼저 쓴 후 아이에게 씌우라는 비행기 안전 수칙처럼,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닌 ‘필수’이다.
하루 10분이라도 좋다. 조용히 눈을 감고 커피 한 잔을 음미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짧은 글을 써보는 것도 좋다. 아이가 자는 틈에 나의 감정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작이다.
그리고 자기 돌봄은 습관이다. 반복되면 그것이 나를 지탱하는 근육이 된다. 그런 근육이 생기면 예상치 못한 육아의 고비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나를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이 엄마를 강하게 만든다.
엄마도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자주 자신을 평가한다. 오늘은 몇 번 화를 냈는지, 아이가 얼마나 웃었는지, 밥은 잘 챙겨줬는지.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완벽하길 바라지 않는다. 아이가 원하는 건 엄마가 ‘진짜 내 편’이라는 안정감이다.
실수해도 괜찮다. 목소리를 높인 날이 있어도, 너무 지쳐 눈물 흘린 날이 있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고, 그 마음은 이미 충분하다.
‘괜찮은 엄마’는 실수하면서도 다시 아이에게 다가가는 사람이다. 때로는 사과하고 때로는 아이에게 진심을 전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사람. 아이는 그 진심을 느끼고 엄마를 신뢰하게 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배우는 일이다. 그 속에서 엄마도 함께 성장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함께 울어도 괜찮은 날들
어느 날 밤, 아이와 함께 나도 울었다. 아이는 내가 우는 모습을 보며 말없이 내 손을 잡아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이도 엄마를 이해하려 애쓰고 있구나.’
우리 모두 처음이다. 아이는 아이로서, 나는 엄마로서. 실수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우리는 함께 자란다.
‘아이보다 내가 더 울고 싶었던 날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날들이 있었기에 더 단단해진 내가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이도 자란다. 그러니, 오늘도 울어도 괜찮다. 내일은 조금 더 웃을 수 있을 테니까.
울음은 약함이 아니다. 때로는 치유의 시작이고 마음의 정화이다. 그 눈물이 지나간 자리에 더 깊은 사랑이 자리 잡는다. 우리 아이와의 시간은 그렇게 눈물과 웃음이 공존하는 일상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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