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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왜 기다리는 걸 어려워할까?
마트에서 과자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 놀이터에서 집에 가기 싫어하는 아이, 스마트폰을 내놓으라며 당장 달라고 떼쓰는 아이. 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한다. 어른 입장에선 단순히 버릇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속엔 아이 발달 특유의 심리와 뇌 구조가 숨겨져 있다.
아이에게 '기다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그 감정은 아이를 강하게 끌고 간다. 이 감정의 파도 위에서 아이는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 그리고 부모는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아이가 '지금 하고 싶은 마음'을 조절하고, 기다림을 배워가는 과정을 살펴보며 부모의 역할과 대화법, 일상 속 실천 팁까지 함께 나누려 한다.
기다림을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들이 기다리지 못하는 데에는 뇌 발달의 이유가 있다. 인간의 뇌에서 충동을 조절하고 감정을 조율하는 전전두엽은 청소년기까지도 계속 발달하는 영역이다. 특히 유아기와 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지금 하고 싶은 것'을 멈추고 판단하는 기능이 아직 충분히 자라지 않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당장의 보상에 민감하고, 미래의 보상을 상상하거나 계획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래서 '지금은 안 돼'라는 말보다 '지금 주면 더 좋다'는 감정이 행동을 이끈다. 이는 버릇이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발달 과정에 있는 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또한 이 시기의 아이는 감정 조절에 필요한 언어적 표현이 부족하다.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을 때 그것을 말로 설명하거나 참는 대신 몸으로 표현하게 된다. 울고, 소리치고, 때로는 바닥에 드러눕는 행동도 그 일부다. 아이의 행동을 통제 이전에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의 이 반응을 무조건 제지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그럴 수 있다”는 이해와 “하지만 이렇게도 할 수 있어”라는 대안을 동시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기다림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아이가 경험으로 익혀가는 감정의 기술이다.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순간들
아이에게 기다림이 힘든 순간은 대개 특정 감정 상태와 연결돼 있다. 배가 고프거나 피곤할 때, 이미 지루함을 오래 참았을 때, 친구와 갈등이 있었을 때처럼 감정적 여유가 없을 때에는 기다림이 더 어려워진다.
이때 아이는 “지금 이걸 해야만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아”라는 감정에 사로잡힌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10분만 기다리자”는 말은 감정적으로는 “지금 당장 위안을 못 받는다”는 좌절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먼저 읽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너무 지루했구나”, “기다리는 게 답답하구나”라는 말 한마디는 아이의 내면에 정서적 여유를 마련해준다. 그 후에야 아이는 스스로 감정을 가라앉히고 기다릴 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낯선 환경이나 갑작스러운 일정 변화 속에서 아이는 더 강한 불안과 좌절을 느낀다. 기다림이 불안정함과 연결되면, 아이는 점점 더 ‘지금 즉시’를 고집하게 된다. 이때 부모의 차분한 대응은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기다림을 연습시키는 일상 루틴 만들기
기다림은 갑자기 길게 시킬 수 없다. 처음엔 아주 짧은 시간부터 연습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과자를 바로 주지 않고 “엄마가 이거 다 치우고 나서 줄게”라고 하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도착하기까지 몇 층 남았는지 같이 세어보자”는 식의 활동은 기다림을 놀이처럼 느끼게 해준다.
또한 약속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효과적이다. 모래시계나 타이머를 사용해 '기다리는 시간'이 보이게 하면, 아이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를 인지하며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시간이 되면 꼭 실행되어야 아이는 기다림이 믿을 만한 것이라고 배운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전환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거나, 간단한 손놀이를 제안하면 감정이 안정되며 기다림을 견디기 쉬워진다. 이런 반복이 쌓이면 아이는 '참을 수 있다'는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또한, 기다림의 성공 경험을 칭찬과 연결시키는 것도 좋다. “지금 참았구나!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데 정말 잘했어” 같은 말은 아이가 자기 조절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데 도움이 된다. 이 말은 단순한 칭찬을 넘어, 아이의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함께 키운다.
부모의 기다림이 아이에게 본보기가 된다
아이에게 기다림을 가르치려면 먼저 부모가 기다림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떼를 쓰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 즉시 제지하기보다 “엄마도 네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릴게”라고 말하며 조용히 기다리는 태도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부모가 자신의 미디어 사용을 조절하는 모습도 기다림 교육의 한 부분이다. 식사 중 휴대폰을 멀리하고, 아이와 대화 중에 다른 일을 멈추는 등 '중단하고 기다리는 자세'를 실천하면, 아이는 일상에서 그 태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기다림은 결국 타인을 배려하고, 자기 감정을 관리하는 능력의 출발점이다. 아이가 기다릴 수 있을 때, 더 많은 관계가 원활해지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힘도 자란다.
특히 부모가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반응하기보다 호흡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하는 모습은 기다림과 자기조절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교육이다. 부모의 반응이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을 때, 아이는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는다.
기다림은 훈육이 아니라 연습이다
아이의 “지금 당장!”이라는 요구는 자연스럽다. 그것은 자율성을 향한 첫걸음이며 감정이 자라는 과정에서 누구나 거쳐 가는 시기다. 이때 중요한 건 아이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잠깐 멈추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기다림은 훈육의 결과가 아니라 연습과 경험으로 키우는 능력이다. 부모가 일관된 태도로 기다림을 구조화해주고 감정을 함께 공감하며 다음 행동을 안내할 때 아이는 비로소 '지금 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서 '더 나중에 더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기다릴 줄 아는 아이는 단지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아니라 삶을 스스로 이끄는 힘을 가진 아이로 자란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오늘, 부모가 아이의 작은 감정을 기다려주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기다림이란 결국 ‘스스로를 다룰 줄 아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이는 시험 성적이나 훈육의 성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아이의 전 생애를 지탱해 줄 내면의 뿌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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