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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싫어요"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아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있다. 바로 “공부 하기 싫어요”라는 말이다. 어떤 부모는 이를 단순한 게으름이나 성격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어떤 부모는 야단을 치거나 동기 부여를 시도한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공부 싫어”는 그리 단순한 말이 아니다. 이 말 뒤에는 불안, 부담, 두려움,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까지 숨어 있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데 본능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기기 시작하면서 탐색하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질문하고, 장난감과 놀잇감으로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공부'라는 이름이 붙는 활동만 유독 거부감을 일으킨다. 왜일까?
그 핵심에는 '과제'와 '놀이'를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오늘 이 글에서는 과제와 놀이 사이의 경계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왜 그 경계를 허무는 것이 중요한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아이의 눈에 보이는 '공부'는 무엇인가?
아이가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시기는 대부분 초등학교 입학 전후다. 그 시기까지 아이에게 학습이란 놀이의 연장선에 있었다. 퍼즐을 맞추고 블록을 쌓으며, 이야기책을 보며 상상하고,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는 모든 과정이 공부였다. 그런데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공부'라는 단어가 점차 '해야만 하는 일', '결과가 평가되는 일', '틀리면 혼나는 일'로 바뀐다.
아이는 공부 시간에 더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내던 아이가 점차 문제에 있는 질문에만 답을 요구받고 그에 따른 정답만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한 활동보다 정해진 문제를 정확하게 푸는 ‘정답 맞히기’ 게임으로 전락한 공부는 아이에게 놀이와 분리된 ‘부담의 시간’이 된다.
놀이가 갖는 자유, 자율성, 몰입, 창의성과 달리 과제는 시간 안에 정해진 방식으로 정답을 도출해 내야 하는 규칙의 세계다. 아이는 놀이와 과제를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경계가 뚜렷해질수록 공부는 더 멀어지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놀이와 과제를 분리할수록 공부는 '타인의 일'이 된다
부모가 아이에게 “놀았으니 이제 공부하자”, “이건 공부고 저건 놀이다”라고 구분할수록 아이의 뇌는 두 활동을 더 명확하게 구분하게 된다. 놀이 시간에는 웃고 뛰며 마음껏 표현하지만 공부 시간에는 긴장하고 지루해하며 몸이 굳는다. 놀이에서는 아이가 주도하지만 공부는 누군가에게 이끌려야만 한다.
이런 구분은 부모가 의도한 것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감정적 안정과 성취감을 얻고 실수해도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다. 반면, 공부는 평가받고 판단받는 활동으로 인식된다. 자연스럽게 공부 시간은 위축의 시간이 되고 놀이 시간은 해방의 시간이 된다.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심화된다.
결국 아이는 공부를 '부모가 시켜서',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타인의 일로 인식하게 된다. 스스로 주도성을 갖지 못하고 내적 동기보다는 외적 보상이나 처벌에 의해 움직이는 태도가 굳어진다. 이는 공부에 대한 장기적인 거부감, 학습 동기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과제를 놀이처럼, 놀이를 학습처럼 전환하기
경계를 허문다는 것은 공부를 무조건 재미있게 만들라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습 활동을 놀이의 요소로 녹여내고 놀이의 순간에도 배움이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받아쓰기를 단순한 평가가 아닌, '틀려도 되는 게임'으로 접근한다면 아이는 훨씬 덜 긴장한다.
숫자 연산을 요리 재료 계량으로 연결하고, 독해를 좋아하는 이야기 책으로 시작하거나, 일기 쓰기를 가족 인터뷰로 전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핵심은 아이가 스스로 주도성을 갖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놀이의 몰입이 학습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공부에 대한 거부감은 점차 줄어든다.
또한, 일상의 활동 속에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 장을 보며 돈을 계산하거나, 교통표를 보며 시간표를 읽는 일도 훌륭한 학습이 된다. 책상 앞에 앉아야만 공부라는 생각을 지우는 것, 그것이 경계를 허무는 출발이다.
학습의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자율성과 흥미가 살아난다
놀이와 과제의 경계가 허물어지면 아이의 뇌는 '학습'을 더 넓은 개념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단지 재미있게 공부시키는 요령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내가 하고 싶은 활동 안에 배움이 있다”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감각이 쌓이면서 자기 주도성이 생기고 지적 호기심이 자란다.
자율성이 높은 아이들은 교과서 외의 지식에도 흥미를 보이며 틀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부모가 틀림에 관대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태도를 보이면 아이 역시 스스로 학습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왜 틀렸어?”가 아닌 “어떻게 생각했어?”라는 질문 하나로도 아이는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
학습의 주도권을 아이에게 조금씩 넘기는 것은 단지 교육 전략이 아닌 관계의 변화다. 부모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사람’이 될 때, 아이는 학습의 긴장을 내려놓고 놀이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아이는 공부를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
아이가 즐거워야 공부가 시작된다
아이의 공부 거부감은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이 아니다. 아이의 내면에는 “이건 내 일이 아니야”, “재미없고 어렵고 틀리면 혼나”라는 부정적 감정이 쌓여 있다. 이 감정을 풀어주는 시작점은 바로 놀이와 과제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데 있다.
놀이처럼 다가오는 학습, 학습 속에 자연스럽게 배어든 놀이. 이 두 가지가 연결될 때 공부는 아이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다. 아이가 몰입하고, 주도하고, 틀려도 웃을 수 있는 공부는 단지 학습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그것은 아이의 자존감, 자기표현,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까지 길러주는 토대다.
공부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부모가 만들어주는 환경이 아이에게 그 태도를 결정짓는다. 경계를 없애는 순간, 아이는 더 이상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활동’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이것이 공부 싫다는 아이를 위한 진짜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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